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1호] 나는 술만 빼면 괜찮은 사람

HDC 소식

by 채널HDC 2020. 11. 13. 15:24

본문

 

 

#. 일곱 살 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안일을 마친 뒤, 혼자 식탁에 앉은 30대 주부 A 씨.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캔을 꺼내든다. 깜짝 승진했다는 과거 동기의 소식에 '내가 더 잘 나갔었는데' 괜히 서럽고 공허했는데,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모든 걸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 자녀가 독립한 60대 B 씨. 남편은 골프, 등산 생각만 하고, 얘기라도 들어주던 자녀마저 곁에 없으니 늘 허전하다. 이럴 때 즉효약은 좋아하는 드라마와 약주 한 잔. 달달한 과실주를 한 잔 두 잔 홀짝이다 보면, 온 세상이 내 편인 듯 편안하고 넉넉해진다. 이제 술이라도 마셔야 잠이 잘 오니, 멈추기도 어렵다.

#. 집안 문제로 부쩍 남편과 말다툼이 잦아진 40대 K 씨. 아이들은 각자 바쁘고, 빠듯한 살림에 나가서 돈 쓰긴 아깝고, 풀 데라곤 조용한 집에서 한잔하는 일밖에 없다. 술이 세지 않아 곧 알딸딸해지지만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만 깨면 된다는 생각에 점점 들이키는 잔이 늘어간다.

 

가족들이 각자의 일상으로 떠난 뒤, 집에 혼자 남아 술잔을 기울이는 주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키친 드렁커'. '혼술'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지만, 최근 집에 혼자 남아 술을 마시는 여성 인구가 늘어나면서 등장한 신조어다. 기분전환 삼아 부엌에서 한두 잔 기울이는 일상이 습관으로 이어지면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으로 인해 '키친 드렁커'에 대한 걱정스러운 시선이 높아지고 있다.

 

 

술의 덫, 조용한 부엌으로 들어오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의 경우,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습관적인 음주를 시작하는 일이 많다. 반면 키친 드렁커가 알코올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대부분 가족과의 관계 문제나 성취감을 느낄 수 없는 생활에서의 우울감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이 차이를 이해한다면, 키친 드렁커가 술에 빠지는 일이 왜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직장이나 학교로 나간 시간, 익숙한 내 부엌에서 한두 잔으로 시작하는 음주가 반복되면서 습관으로 자리 잡기 쉽다. 집에 혼자 남아 시간을 채워야 하는 외로움, 열심히 해도 현상 유지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사노동,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에서 오는 공허함, 사회생활과의 단절로 인해 채워지지 못하는 성취욕과 상실감, 배우자나 자녀와의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으로 술을 선택하는 것이다. 혼자 술 마시는 시간을 위안으로 삼으니, 점차 과음하게 되면서도 이를 자각하기 어렵다.

 

“술이라도 마셔야 우울하지 않아요. 처음엔 한두잔 마시면 괜찮아졌는데, 이젠 한 병은 마셔야 잘 수 있네요. 일찍 일어나 봤자 할 일도 없고 더 공허하니, 그냥 맘 놓고 마시는 게 나아요.”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알코올 전문병원인 다사랑 중앙병원의 김석산 원장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 증가와 저도주, 과일주 등 여성 기호에 맞춘 주류 시장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여성 음주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특히 중년 여성 중에는 부엌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는 '키친 드렁커'가 중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19세 이상 여성의 월간 음주율은 2005년부터 꾸준하게 증가해, 2017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5년마다 실시되는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역학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여성 알코올 남용 및 의존증의 1년간 유병률은 6.4%로 약 40만 9,000명에 이른다. 

키친 드렁커는 아침에 가족들이 집을 떠난 뒤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가족이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면 술을 마시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 초기에는 눈치채기 어렵다. 감추기 어려울 만큼 의존성이 심해졌을 때 가족들도 서서히 이상 징후를 느끼게 되고, 이를 제대로 인지했을 때는 이미 중독 증상이 진행되어 늦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알코올 남용을 넘어 의존증 단계는 뇌가 술에 대한 조절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술을 충동적으로 마시고 점점 양이 늘어가는 '내성', 그리고 술을 안 마시면 불안, 식은땀, 손떨림 등의 증상이 있을 때 의존증 단계로 판단할 수 있다. 이미 의존증이 생긴 이후라면 스스로 술을 끊기가 힘든 만큼,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키친 드렁커로 음주 문제를 겪고 있을 때, 사회적 편견과 비난이 걱정되어 숨기거나 방치한다면 적절한 치료로 이어질 수 없어 더 악화되기 마련이다. 키친 드렁커는 정서적인 결핍이나 스트레스 등 '마음의 문제'로 인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 많으므로, 비난보다 도움을 건네는 마음이 필요하다.

 

 

차가운 알코올 대신 따뜻한 힐링을 찾아서

 

알코올에 대한 의존증을 없애려면, 그 자리를 다른 즐거움으로 채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심신을 안정시키고, 복잡한 생각을 줄이는 데는 술 대신 차를 마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차에 함유된 500가지가 넘는 성분들이 몸과 마음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중 아미노산의 일종인 테아닌이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주요 성분이다. 테아닌은 뇌 신경 전달물질을 조절하고 신경계를 안정시켜주는 기능으로 인해 '천연 진정제'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사람이 가장 안정될 때 나오는 뇌파인 '알파파'는 테아닌을 복용한 후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활력소가 된다. 쉬운 공예나 뜨개질 등 집안에서 혼자 시도해볼 수 있는 취미 생활도 많다.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하는 때라면 다양한 랜선 모임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몸을 움직이면 마음의 활력도 돋아나기 마련이다. 요즘 유행하는 홈트레이닝을 꾸준히 시도한다면, 스스로를 돌보고 응원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의존증에까지 이르게 하는 술은 결코 유쾌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자각 또한 필요하다. 매일 당연시하던 혼술을 멈추고, 외부로 눈을 돌린다면 더 많은 여유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키친 드렁커가 흔해 진다는 것은, 그만큼 가정 내에서도 진정한 소통과 역할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집안을 지키는 이도, 집 밖에서 돌아온 이도, 혼자만의 시간에서 걸어 나와 함께 나누고 위로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참고 자료

2030세대 옭아매는 술의 덫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70250

'다사랑 중앙병원' 다사랑 알코올 정보 https://www.dsr5000.com:5000/community/alcohol_info_01.php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