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뛰어놀던 아파트 화단,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던 미끄럼틀과 그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했던 엘리베이터.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이런 풍경 속에서 나고 자란 세대를 '아파트 키드'라고 한다. 이들이 어릴 때부터 뛰놀던 놀이터이자 고향이었던 아파트는, 그들이 자신만의 삶을 이룬 어른이 될 때까지 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나의 일상 속에 존재할 것만 같았던 그 아파트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파트 키드 세대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고향인 아파트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
1979년 준공된 강동 둔촌주공아파트는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대규모 아파트이자 둔촌1동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단지였다. 39년 동안 누군가의 보금자리였던 둔촌주공아파트는 2013년 재건축이 결정되었고, 2018년 마침내 철거되어 주민들 곁을 떠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곧 사라질 아파트를 기억하기 위해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동안 일상과 추억 속 배경이 되어 준 아파트에 대한 기억을 모아 잡지로 만든 것이다.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파트 풍경 등을 가득 담은 이 잡지는 총 4권으로 발간되었다.
특히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자라며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있어 어린 시절 그 자체인 놀이터는 잡지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중에서도 아파트의 상징과도 같았던 높이 5m 기린 미끄럼틀과의 헤어짐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아쉬움이었다. 철거 전, 기린 미끄럼틀의 마지막 모습과 철거 과정은 다양한 사진과 영상으로 남게 되었다. 어린 시절을 이 곳에 묻은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불꽃놀이를 하며 추억의 공간과 이별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둔촌주공아파트 주민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도 만들어졌다.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재건축 전 아파트에 대한 기억을 나누었던 이 영화는 고향이 사라져도 계속 기억하겠다는 주민들의 바람을 담았다. 이 프로젝트는 평범한 아파트가 아니라 동네 그 자체였던 둔촌주공아파트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었다.
<수정아파트> 프로젝트
철거되는 대신 새롭게 모습을 재단장한 아파트도 있다. 1962년 지어진 부산의 대표 아파트로, 무려 57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던 수정아파트는 2019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새 생명을 얻었다. 부산문화재단에서는 수정아파트 16동에서 <수정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생기는 수정아파트와 같은 공간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림자 인형극, 인문예술창작 체험, 토크콘서트, 전시회, 나만의 수정동 찍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낡은 아파트가 갤러리, 파티, 체험프로그램이 열리는 장소로 바뀌었던 특별한 프로젝트였기에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프로젝트 이후 수정아파트의 빈집은 청년 작업공간과 임대공간으로 활용되며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
1982년 준공되어 약 30년 간 그 자리를 지켰던 개포주공아파트가 최근 재건축을 마치며 새로운 아파트로 분양되었다. 재건축이 결정되고 나서부터,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아파트를 보내주려는 사람들이 모여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를 통해 개포주공아파트의 마지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총 두 가지 활동으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아파트 내 추억의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는 ‘기억 산책’, 다른 하나는 재개발 진행 중 방치되어 숲을 이룬 나무들 사이로 산책하며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는 ‘나무 산책’이다. 특히 ‘나무산책’을 통해 기록을 남겼던 나무 일부는 서울 숲으로 옮겨져, 주민들의 추억으로써 보존될 것이다. 각자의 소중한 추억을 담은 이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와 책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고향은 내 어린 시절, 내 추억, 내 일상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힘들 때 찾으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고향은 어디일까. 하굣길 친구와 떡볶이를 먹으며 걸었던 아파트 옆 골목길, 가족과 함께 걸었던 단지 내 산책길, 가끔 마주치던 길고양이가 있던 놀이터. 이들에게 고향은 바로 ‘아파트’이다. 그리운 추억들이 곳곳에 녹아 있는 고향인데, 이 공간이 도시의 발전과 함께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고향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한 활동을 시작했다. 철거되는 아파트는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사진으로 남기고, 낡아서 이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아파트는 새로운 공간으로 꾸미는 것. 이는 아파트가 고향인 세대가 고향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방식일 것이다.
추억이 지나간 자리에는 또 새로운 시간으로 채워지는 법, 둔촌주공아파트와 개포주공아파트는 HDC현대산업개발이 함께 하는 대단지 아파트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올림픽파크 에비뉴포레와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누군가의 추억을 쌓아갈 아파트 단지들의 모습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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