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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타인의 해석

HDC 생각

by 채널HDC 2020. 7. 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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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와 억측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라는 착각, 내눈 앞의 사람들이 내 믿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란 기대 속에서 말이다.

인간 관계를 이야기할 때 고전처럼 인용되는 이론 중 하나가 바로 ‘초두효과(Primacy Effect)’ 즉, 첫 인상의 법칙이다. 사람에 대한 첫 인상은 시각적인 자극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대부분 만난지 수 초 이내에 중요한 판단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한 채 맨 처음 입력된 ‘느낌’이라는 불확실한 정보가 이후의 관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대개는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타인의 해석’은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든다.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를 뒤덮고 있는 무수한 편견과 고정관념부터 제거해야 한다. 진실이란 그저 자신이 바라는 사실에 불과할 뿐, 우리가 아는 것의 대부분이 틀렸다는 각성을 통해 진실에 조금씩 다가설 수 있다.

 

 

내 판단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말콤은 ‘진실 기본값의 이론’을 통해 인간의 흔한 오류를 지적한다. 상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오히려 관계를 망치게 된다는 것이다.

미 국방 정보국 소속의 애나 몬테스는 조직 내 스타로 불릴 정도로 성과를 인정받는 직원이었지만 훗날 밝혀진 실체는 놀랍게도 쿠바의 비밀 첩자였다. 엘리트 집단에 속한 동료들은 물론 연방수사국 요원이었던 친동생 마저도 그녀가 나라를 위험에 빠트릴 인물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뒤돌아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이 왜 없었겠는가 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 못했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기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의 그녀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히틀러를 직접 만났던 영국의 총리나 각료들 역시 그가 적어도 전쟁을 일으킬 인물은 아니라고 여겼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흉포한 인물이라도 면전에서 거짓말을 늘어 놓으면 가려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일까? 말콤은 사람 속을 몰라서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번 확증된 사실이라도 반증하는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애나 몬테의 동료들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의 행동이 내면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종종 속마음과 동떨어진 표정을 짓고, 전혀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웃고 있다고 어찌 반드시 즐겁기만 할까.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 않다고 슬퍼하지 않는 게 아니다. 선한 표정이나 범죄자의 얼굴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직면한 상대방의 지금 모습이 판단의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2015년 1월 샌드라 블랜드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은 도로에서 운전 중 억울하게 경찰에 체포되었고 수감 사흘만에 유치장에서 자살했다. 현재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 당시 흑인 여성을 체포했던 엔시니어 경관은 명확한 혐의점 없이 그녀의 태도 하나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범했다. 대화하는 동안 접수된 자의적인 느낌,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몰아갔다. 블랜드와 엔시니어는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상대방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각자 자신들이 예상한 반응에서 벗어나자 서로를 비난하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누군가의 표정이나 제스처 심지어 언어 마저도 그 사람의 본의를 완전히 대변하지 못한다. 자신의 스펙트럼에 맞춰 타인을 해석할 때 관계는 망가진다.

 

겸손과 절제의 태도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렇다고 무조건 타인을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경솔한 판단을 경계하고 소통의 본질에 집중하려면 먼저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행동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매우 복잡 다단한 요소들이 뒤엉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낯선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반응 이면의 다양한 변수들과 그들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보다 진심으로 알고자 하는 성실한 노력이 진실한 관계의 뿌리가 된다.

“중앙정보국이 조직 한가운데에 침투한 스파이를 찾아내거나, 투자자들이 모사꾼이나 사기꾼을 발견하거나 우리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중을 투시력으로 꿰뚫어 보는 완벽한 기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제와 겸손이다.”

타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에 특별한 배움이나 지적능력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지식이 많은 사람, 우수한 능력의 소유자들이 불협화음의 주범이 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본다. 진실한 관계를 원한다면 겸손하고 절제하자. 말콤 글래드웰은 책의 서두에서 ‘세상의 아름답고 의미있는 일들은 대부분 과감하게 다른 이들과 말을 터보면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사람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관계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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