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여러 분야의 산업들이 위기를 맞은 가운데, 기존의 산업과 달리 배달이나 화상회의 앱 등 일부 업계는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재택이나 원격 근무가 늘어나자 언택트(비대면) 소비가 주목 받게 된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의 역설'이다. 때때로 우리는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역설적으로 성공을 이루는 아이러니를 종종 목격하는데, 이러한 역설은 비즈니스에도 예외가 없다.
쉽게 떨어져서 더 잘 팔리는 접착제?
미국의 세계적인 사무용품 기업 3M은 역설적인 접근으로 사업에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누구나 책상 위에 하나쯤 붙여 둔 ‘포스트 잇(Post It)’의 탄생 이야기다. 1968년, 3M의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는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려고 하였지만, 실수로 원료를 잘못 배합하는 바람에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가 만들어졌다. 접착력이 떨어지는 접착제라니, 누가 봐도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혹시 쓸모가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사내 세미나에 공개했고 4년 후, 같은 연구소의 '아서 프라이'가 그의 실패작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찬송가를 쉽게 찾으려고 끼워 둔 종이 책갈피가 자꾸 쏟아지는 바람에 불편함을 겪다가 스펜서 실버의 접착제를 떠올린 것이다.
끈적이지도 않았고, 종이를 상하게 하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는, 얇은 종이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였다. 접착력이 약해서 오히려 쓸모 있게 된 포스트 잇! 이 획기적인 상품은 1981년부터 미국 전역에서 팔리기 시작했고, 흥행에 힘입어 세계로 수출됐다. AP통신은 ‘포스트 잇’을 '20세기 10대 히트 상품'으로 꼽기도 했다.
못생겨서 더 아름답다
영국의 핸드 메이드 화장품 러쉬(LUSH)도 모순으로 빛을 본 브랜드다. 흔히 '비누'라고 하면, 그 용도와 어울리게 포장지에 싸여 일률적으로 매끄럽게 찍어낸 깔끔한 모양새를 떠올린다. 하지만 러쉬는 이런 고정관념을 거두고 ‘못생김’을 택했다. 손으로 만든 듯 모양도 크기도 제 각각에 포장도 안 한 채 아무렇게나 매장 선반에 쌓아 놓은 것이다. 전통 시장처럼 원하는 양 만큼만 잘라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못생긴 비누는 오히려 고객에게 진정성을 얻어냈다. 꾸며낸 듯한 고급스러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이미지가 제품의 강점인 천연재료를 더 부각시킨 것이다. 2-3단계로 과대 포장하는 화장품과 달리 포장을 하지 않아, 역설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환경을 생각하는 올바른 기업의 이미지를 더불어 심어주었다.
편견을 깼더니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나라의 방역업체인 스테라피의 성공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스테라피의 이승재 대표는 원래는 군전차에 들어가는 그래픽카드를 개발하는 업무를 했다. 어느 날, 미국산 공간 멸균 장비의 국산화 개발을 맡게 되었는데, 그는 멸균 공간을 군 장비로 한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정으로 확장하면 어떨까 생각하였고 이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되었다. 세균과 유해물질은 일반인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이니 수요가 있으리라 믿었다.
2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한 그는 마침내 세계최초로 ‘공간 멸균 기술’을 개발해냈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을 거둔 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방역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낮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멸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이다 보니 과대광고를 하고 품질을 떨어뜨려 이득을 취하는 경쟁업체도 생겼다. 그는 이를 따라가는 대신 반대의 길을 걸었다. 오히려 고가의 '프리미엄 방역'을 시작해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인 것이다. 그 즈음 코로나19가 발생했고 프리미엄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매출이 20배 이상 뛰었다.
위기는 오히려 성장의 동력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기술이 발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노환진 교수는 ‘단순히 기술 확보만을 목표로 한 연구과제는 상용화까지 이어지기 힘들어도 ‘수입품을 대체한다’와 같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추진하는 연구과제는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즈니스에서의 역설은 위기를 돌파하는 지혜이다. 다만, 그 역설에는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3M의 ‘포스트 잇’ 역시 처음엔 다들 그 쓸모를 반신반의하여, 500대 기업의 비서들에게 견본을 보내주며 끈질긴 설득을 했다고 한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신념을 갖고 끝까지 밀어 부치는 일, 역설적인 성공은 운이 아닌 탄탄한 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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