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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투명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

HDC 생각

by 채널HDC 2020. 5. 2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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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이 리드해야 하는가? (Why should anyone be led by you?) 런던경영대학원의 랍 거피(Rob Goffee)와 가레스 존스(Gareth Jones)는 2000년 9월 하버드비즈니스 리뷰(HBR)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모든 것을 바꿔놓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많은 이들이 리더들에게 갖는 의문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에 전 세계의 리더들이 대응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묻는다. 왜 당신이 우리를 리드해야 하는가. 초유의 위기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리더의 모습은 무엇일까.*

 

위기에 빛나는 ‘정은경식 리더십’

지난 1월, 한국의 첫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온 후, 매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국내 감염상황을 차분히 설명하는 한 사람. 그는 우리나라 감염증 위기관리 책임자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백 삼십 여일, 약 칠십 여 차례 이뤄진 그의 브리핑은 한결같았다. 대구 신천지, 구로 콜센터, 이태원 집단감염 등 각종 변수로 위기 상황은 악화됐지만, 정 본부장은 국민 앞에서 불안해하지 않는다. 일관된 논리로 또박또박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기자들의 거친 질문에도 늘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그가 수많은 언론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방역전선에서 쌓은 노하우 덕분이다. 철저한 검사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연합뉴스

 

외신은 K-방역의 주역, ‘정은경 리더십’을 연일 극찬했다. 일본의 보수 유력지 요미우리 신문은 정 본부장을 “한국의 코로나19 대책을 이끄는 영웅”이라 소개했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그를 “세계 최고의 바이러스 사냥꾼”으로 꼽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그가 믿는 것이 곧 사실”이라며 무한신뢰를 보냈다. 대체, 그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리더의 솔직한 어조, 투명한 정보 그리고 인내를 겸비한 침착함은 대중에게 강력했다.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리더를 신뢰했고, 그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었다. 정 본부장은 카리스마와 위엄을 갖춘 지도자가 아닌 국민과 소통하는 ‘부드러운 메신저’였던 것이다.

정 본부장의 일거수일투족도 최대 관심사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공손한 자세, 하얗게 센 머리, 수척해진 얼굴은 위기국면을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정은경 리더십’을 높게 평가한 보도를 본 소감을 물은 적이 있다. 정 본부장의 답은 명확했다. 이는 자신과 방역대책본부만의 일이 아닌 민관의 협력, 사회적 연대의 결과라고 소신껏 답했다. 위기에 대응하는 관리자가 아닌 위기 이후를 내다보고 폭넓게 대처할 수 있는 위기의 리더, 이것이 ‘정은경 식 리더십’이었다.

 

코로나19에 무너지는 스트롱맨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속 강한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들이 위태롭다. 진원지 중국을 넘어 코로나19 확진자, 사망자 수 1위를 기록 중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는 중국 때문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은폐 축소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확진자가 급증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뒤늦게 긴급사태를 선언했지만, 국민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세 지도자는 모두 권위주의적 리더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번 코로나19 상황에 국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 연합뉴스  

 

지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보다 사람들이 더 주목하는 인물은 바로 뉴욕주지사인 앤드루 쿠오모다. 새로운 글로벌 전염의 중심지 미국, 발이 묶인 뉴욕 주민들에게 매일 낮 12시, 주지사의 브리핑을 보는 것은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파워 포인트를 동원해 장비 부족 현황을 수치로 제시하고, 직접 수동 인공 호흡기인 백 밸브 마스크의 사용법을 전달했다. 브리핑 룸이 아닌 임시병동 등 현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단호하고, 사실에 근거한 발언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고, 중국 바이러스 란 말을 쓰며 책임전가로 일관하는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되었다. SNS에서는 ‘대통령 쿠오모(PresidentCuomo)라는 해시태그 운동과 함께 ‘쿠오모 대망론’이 언급될 정도다. 쿠오모 주지사의 브리핑은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노변담화(爐邊談話, fireside chat)’를 떠올린다.*** 노변담화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사실대로 전달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 낸 ‘공감 리더십’을 상징한다.

 

위기와 싸우는 리더, 완벽보다 진실이 우선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인 AC(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위기는 우리들에게 리더의 자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위기 상황에 필요한 리더의 덕목은 더 이상 ‘위엄 있는 카리스마’가 아니다. '투명하고 부드러운 메신저'의 역할이다. 충분한 설명과 정보를 공유하며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리더의 수평적 소통은 결국 구성원 모두가 ‘셀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 또한 실수를 인정하고 함께 헤쳐 나갈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리스크와 싸우는 리더의 덕목은 결국 ‘완벽’이 아닌 ‘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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