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 경제에서 경제적 이득의 추구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사람들은 자기만족과 효용, 이윤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종종 도덕이나 윤리 등의 덕목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최대 이익이 곧 최선이라 믿으며, 상반된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할 때에도 옳은 것보다 손해 보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자신의 욕망을 중시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적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에게 과연 윤리는 작동 가능한 원리일까?
덴마크의 대중 철학자 스벤 브링크만(Svend Brinkmann)은 그의 저서 ‘절제의 기술’을 통해 욕망의 유혹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 안의 이타심과 정의감
저자는 우리의 본성에 이타심과 정의감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음에 주목한다. 행동경제학의 대표적 실험인 ‘독재자 게임’이 좋은 증거가 된다. 익명의 참가자 두 명으로 구성된 이 게임에서 독재자 위치에 놓인 사람에게는 맡은 돈을 마음대로 분배할 제왕적 권리가 주어진다. 상대에게 줄 수도 혼자 독식할 수도 있다. ‘경제적 인간’을 표준으로 한다면 자신이 가능한 많은 돈을 차지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독재자’의 67%가 상대와 돈을 나누었고 아예 전부를 다 넘긴 경우도 5%였다. 실험이 끝나고 다시 마주칠 일 없는 사이였지만 상당수가 함께 나누는 길을 택했다.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조금 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익에 대한 욕망보다 공정함의 욕구가 우선적으로 작용하고, 보상의 확신 없이 기꺼이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 또한 인간에게 잠재된 능력이라는 방증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관계를 중시하는 존재이기에 개인의 의사결정 역시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가족, 이웃, 동료 등 사회적 연결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구성원 모두 절제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삶은 ‘상호의존성’을 지닌 타인과의 유대 속에서 이루어진다. 추상적인 타자가 아닌 현실에서 구체적인 관계를 맺고 공통의 역사와 문화를 나누는 이들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물러남의 기술, 자기 통제의 미덕을 실천해야 한다.
윤리적 품성으로서의 절제
절제할 줄 아는 품성은 우리를 도덕적이고 윤리적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이때 품성이란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좋은 품성을 지녔다는 것은 자기 충동에 ‘아니오’라고 거절하는 용기를 지녔다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능력들 없이는 진실하게 행동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깊은 사고와 성찰,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는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고, 자기 충동에 수동적으로 이끌려 다닐 때 올바르고 도덕적인 결론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더욱이 조직에서 개인의 충동적 행위는 한 사람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가까운 동료의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고 공동체의 이익에 해를 입힐 수도 있다. 이렇듯 크고 작은 균열들이 쌓여 조직은 무기력에 빠진다. 자신이 욕망이 한 순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됨을 명심하고 스스로에 대해 냉철하고 엄격한 자기 통제 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절제가 추상적인 개념을 넘어 실존적이고 실행 가능한 원칙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개개인의 특성이나 심리학적 성향으로서의 절제가 아닌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도구로서 얼마든지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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