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돈쭐을 내줍니다’ 결식 아동에게 무료로 파스타를 제공한 한 가게의 기사에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돈쭐 낸다’는 ‘돈으로 혼쭐을 내준다’는 의미의 신조어로 착한 가게, 기업의 물건을 적극적으로 팔아주자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소비의 주체로 떠오른 MZ세대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 기업엔 불매운동으로 혼쭐을, 그리고 착한 기업엔 ‘돈쭐’로 응징을 한다. ‘숨쉴 틈 없이 돈을 벌게 해주자’, ‘재료를 탕진시켜버리겠다’는 애정 어린 농담도 덧붙인다. 소비를 단순한 구매를 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이들은 소비 하나에도 가치를 부여한다. 지금 진정성 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옷과 가방으로 기업의 철학까지 구매한다.
가치를 공유하고 사랑받는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를 꼽을 수 있다. 파타고니아는 ‘그들에게는 지구가 목적이고, 사업은 수단’이라고 말한다. 기업의 이익보다 ‘환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정신을 오랜기간 브랜드의 가치로 고객들과 공유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YE THES JACKET) 캠페인이다. 세상을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남기고 싶으니, 재킷이나 어떤 것이든 사기 전에 깊게 생각하고 적게 소비하기를 바란다며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면 이 제품을 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단순한 메시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파타고니아는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타사제품까지 무표 수선 서비스를 해준다. 패트병을 재활용한 소재로 옷을 만들고 ‘지구를 위한 1%'라는 이름으로 연간 순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파타고니아를 입는 소비자는 자연스레 환경 운동에 동참한다는 의식을 갖는다.
‘재활용 계의 명품’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도 마찬가지다. 프라이탁의 가방은 트럭을 덮는 방수 천과 자동차 안전벨트, 자전거 바퀴의 고무 튜브를 재활용해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데 멈추지 않고, 공장 50%는 재활용 열 에너지로 운영하고, 가방제작에 필요한 물의 30%는 빗물을 쓴다. 방수 천 하나하나 수작업이 필요하다 보니 가방 하나 만드는데 45일이 걸리고, 비용이 수 십 만원을 호가하지만 소비자는 ‘가치 소비’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최신 유행에 빠르게 대처하도록 저렴한 가격에 옷을 자주 사 입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은 옛 이야기가 됐다. 소비자는 환경을 생각한다는 입바른 소리보다 실행력으로 기업을 판단하고, 이는 구매로 이어진다.
‘가치 소비’의 반대는 ‘불매 운동’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다. ‘오뚜기’는 착한기업으로 주목 받고있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정규직의 채용을 확대하고 제품 가격을 동결한 점, 수백 억원 대의 사회공헌을 소리 없이 지속해온 점 등이 알려지며 ‘좋은 기업’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갓뚜기’라는 애칭까지 생겨나며, 오뚜기 주식은 3년 만에 6배 가량 올랐다.
하지만 대리점 갑질 파문과 오너의 도덕성 문제로 연이은 논란에 평판이 크게 추락한 기업도 있다. 타격은 지속적인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제조사 로고가 직접 드러나지 않은 제품을 무의식적으로 사지 않도록 ‘OO제품 구별법’까지 온라인에 공유하는 등 적극적인 불매운동을 펼쳤다.
각종 이슈에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MZ세대는 '디지털 액티비스트(운동가)’로도 불린다. 자신의 가치 소비나 불매 의사를 SNS에 올리고 공유하는 행위에 따라 기업의 가치 역시 오르내린다. 광고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더 이상 소비자는 브랜드명만 보고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기업의 철학, 이미지를 꼼꼼히 따져본 후 나의 가치를 높이는 능동적인 소비를 한다. 소비 주체인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선취력’이라고 한다. 선취력이란 ‘먼저 행동해서 선한 변화를 끌어낸다’는 뜻이다. 어차피 써야 할 돈이라면 조금 더 가치가 있는 곳,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에서 소비하고 싶어한다. 어느 때보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지금, 기업은 얄팍한 상술이나 말 대신 진정성과 사회적 책임을 실행력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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