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는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의 브랜드이다. 백 년의 역사만큼 다사다난한 세월을 보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최근 15년간의 행보는 그 어떤 스타트업 못지않게 역동적이고 혁신적이다. 과거 애니메이션 제국이었던 디즈니는 이제 명실상부 기술 기반의 미디어 기업으로 완전히 변모하였다. 픽사를 비롯하여 마블엔터테인먼트, 루카스필름, 21세기폭스 등 업계 최고의 기업을 인수하면서 콘텐츠 생태계의 빅 텐트로 자리매김한 ‘뉴 디즈니’. 그 중심에는 ‘디즈니 제국의 완성자’ CEO 로버트 아이거가 존재한다.
디즈니, 경쟁자들과 손을 잡다
침체일로에 있던 디즈니의 여섯 번째 CEO였던 그는 대규모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 사실 이 시기 디즈니와 손잡은 파트너들을 보면 이들과의 결합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픽사와는 전임 CEO였던 마이클 아이즈너 시절의 협업 이후 아예 관계가 틀어져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디즈니를 재건하기 위해 픽사와의 협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아이거는 주저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세상 떠들썩하게 이별한 사이였지만 아이거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앙금이 남아있는 스티브 잡스에게 회사를 매각하라고 제안하면서 픽사의 문화를 그대로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픽사는 픽사다울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고 그들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그들만의 문화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로버트 아이거가 바라는 것은 디즈니의 혁신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픽사의 인재들이 필요했다.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드 캣멀, 존 라세터 등 픽사의 경영진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수장으로 앉혔다.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로버트 아이거는 겸손한 자세로 상대를 존중하며 협상을 이어 나갔다.
훗날 스티브 잡스의 증언에 따르면 로버트 아이거가 협상의 주도권을 넘긴 순간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고 비로소 진정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이후 두 사람은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진실한 친구로서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디즈니가 마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할 때에도 스티브 잡스는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진 마블의 수장, 아이작 펄머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상을 돕기도 했다.
마블을 품은 이후 디즈니의 미디어 영토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기존의 디즈니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기우를 불식시키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콘텐츠들을 연이어 내놓게 되었다. 이는 픽사의 조직문화와 사람들을 품었던 것처럼 마블 경영진에게도 전권을 위임하며 최고의 콘텐츠를 창조해 낼 수 있는 판을 깔아 준 결과이다. 상대방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일이 간섭하려 들었다면 ‘디즈니표 마블’의 신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만의 가치를 기준으로 새로움을 더하다
남의 것을 빼앗고 자신의 것을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애쓰는 비즈니스 정글에서 아이거는 상대를 존중하며 진정성 있게 다가갔다. 진정성이 바탕이 된 배려의 리더십으로 이후에도 루카스필름, 21세기폭스 등 세기의 빅딜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설령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정직함을 잃지 않으며 진실하게 다가가는 태도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인수작업 진행 시 우리가 실제로 인수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에서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사람’에 있다. 그리고 리더는 그 회사의 전형이자 화신이다. 당신의 가치, 즉 고결함과 품위 정직에 대한 인식과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회사의 가치를 대변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시대, 로버트 아이거는 존중과 정직, 겸손과 배려를 바탕으로 품격 있는 성공을 일궈냈다. 어쩌면 고루하게 치부되는 전통적 가치들로 디즈니만의 위대한 스토리를 만든 것이다. 새로운 조직과 융합할 때 가장 필요한 건 먼저 우리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분명한 정체성과 기준이 먼저 서 있어야 다양한 이견과 장애물을 돌파할 힘이 생긴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새로운 도약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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