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우리의 유토피아는 어디인가
우리의 삶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객관적인 지표를 보면 세계 1인당 소득은 지난 2세기 동안 10배 이상 증가하였고 인구와 부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250배 성장했다. 세계 역사의 99%를 차지하는 기간동안 인류의 99%는 가난했지만 현재 극빈층은 1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생명을 위협하던 전염병과 질병은 점차 사라지고 첨단의학의 발달은 인체의 면역체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인간줄기세포를 복제하기에 이르렀다. 영양상태가 개선되고 교육이 보편화된 덕분에 대부분 국가에서 국민의 평균 지능지수는 10년 마다 3~5점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나날이 스마트해지고 있으며 각 분야의 지식과 기술은 눈이 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제반 수치는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힘겹다. 참담했던 생활고 속에서 한 줄기 희망과 같았던 상상 속 유토피아가 눈 앞의 현실이 되었는데도 우리는 또 다른 유토피아를 갈구한다. 중세 몽상가들이 이야기한 풍요의 땅은 그저 공상 속 낙원이었을까? 진정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도피처’에 불과했던 것일까?
스스로의 인생을 바꾸는 기회, 기본소득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종착점이 아닌 길잡이로서 유토피아를 이야기한다.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는데도 점점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현실, 빈곤을 완전히 퇴치하고도 남을 만큼의 자본이 있는데도 수백만 명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 이 시대에 다시금 유토피아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브레흐만은 미래 유토피아의 모습을 위해 필요한 것들로 ‘보편적 기본소득’, ‘주당 15시간 노동’, ‘국경 없는 세상’ 등을 제시한다. 기술 발달이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게 하려면 기본소득을 통해 돈과 시간의 재분배(근로시간 단축), 과세의 재분배(노동이 아니라 자본에 부과하는 세금), 로봇의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분배가 필요한 이유는 개선된 삶을 특정 계층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번영 중에서 자력으로 이룩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풍요의 땅에 사는 우리는 조상이 쌓아 올린 사회 자본과 지식과 제도 덕택에 풍요롭게 살고 있다. 이러한 부는 공동 소유이므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유는 국경을 뛰어넘어 지구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특히 기본소득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빈곤을 퇴치하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실시된 무상 현금 지원에 대한 연구들은 기본소득에 대한 긍정적 증거들을 내놓고 있다.
2009년 5월 런던에서 노숙자 13명에게 각자 3,000파운드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실험을 했다. 국가가 노숙자 13명을 관리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원조기구 브로드웨이(Broadway)가 나서 직접 현금으로 주기로 한 것이다. 돈을 어디에 쓸지는 각자의 몫이다.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의무조항도 없었다. 노숙자의 대부분은 검소해서 1년간 소비 금액은 평균 800 파운드에 불과했다. 실험 후 1년 반이 지나자 노숙자 13명 전원이 자립과 개인적인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거리를 떠나는 결과를 만들었다. 돈에 대한 권한과 선택권을 부여하자 스스로 인생을 바꾸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구호단체 기브다이렉틀리(GiveDirectly)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실험 중이다. 단체로부터 직접 현금을 지급받은 빈곤층은 대부분 생산적인 일에 사용했다. 창업이나 교육을 위해 투자하고 그 결과 소득과 고용은 모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술, 담배, 마약 등에 ‘함부로’ 쓸지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경제학자 찰스 케니는 “빈곤층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돈이 충분히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곤층에게 돈을 제공하는 것이 빈곤 문제를 줄이는 훌륭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돈을 다룰 능력이 없다는 편견은 점차 무용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브레흐만은 무상 현금지급은 세계가 보증하는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한다. 호의가 아닌 권리로서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누구나 수혜를 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고 진보의 역사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만큼이나 노동시간 단축은 오랜 세월 삶의 질을 좌우하는 주요 의제로 논의되고 있다. 브레흐만의 유토피아에서는 일을 재정의함으로써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본소득이 확보되고 불필요한 일에 벌려지는 시간을 제거한다면 주 15시간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대신 남는 시간을 창의적인 여가활동으로 활용할 때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단순히 노동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에 투여하는 에너지의 비중을 늘릴 때 삶은 보다 풍요로워진다.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유토피아의 힘
브레흐만의 주장이 급진적이라는 의견도 물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유토피아라는 결과보다 그곳을 향한 긴 여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기업이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것도 고민의 과정을 통해 이미 성장이 시작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HDC그룹 역시 ‘더 나은 삶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천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유연근무제 도입, 근무시간준수 등을 통해 현재의 나와 내 일을 재정의하고 이전보다 더 나아진 업무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일하는 곳이 또다른 유토피아가 되지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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