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선생님의 강의를 경청한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면 피고와 원고 모두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 의사가 병을 진단하면 환자는 그 말을 믿고 치료에 들어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선생님이나 판사, 의사에게는 ‘그래도 되는’ 혹은 ‘그럴 수 있는’ 권위가 부여됐기 때문이다. 권위는 강자가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힘의 논리 즉, 권력과는 차이가 있다. 일종의 자발적 동의, 자발적 복종이 권위를 만든다.
회사 조직에서도 자발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위에서 시켜서 억지로 반응하거나 할 수 없이 마지못해 쫓아가는 일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으며, 세대 간에 서로 다르다고 느끼는 차이도 커져가고 있다. 전통적 개념의 권력이나 수직적이고 가부장적 권위로는 더 이상 기업을 생산적으로 운영하기 힘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권위'란 무엇일까
임상심리학자인 파울 에르하에허는 “권위란 구성원들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규범과 가치에서 탄생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정의한다. 사람들 사이의 의사결정 혹은 행동을 규제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권위는 사회를 작동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특히 ‘수평적 조직문화’에 기초한 ‘수평적 권위’는 다수의 인정을 바탕으로 주어진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수평적’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무조건 똑같은 위치에 있다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구성원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움직이는 집단지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모든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공유된 정보를 바탕으로 공통의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각기 적합한 역할을 맡고 위임한다는 의미이다.
수평적 체계에서 권위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수평적 조직의 리더는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평등한 사람 중 맨 앞에서 견인하고 독려하는 사람이 된다. 이때의 권위는 한 사람이 독식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여럿이 나누거나 서로에게 양도할 수도 있다. 단, 그에 따른 명확한 책임은 필수이다.
감시와 검열을 놓자, '스스로 일하는 조직'이 되다
브라질 굴지의 대기업 셈코(Semco)의 CEO 리카르도 세믈러(Ricardo Semler)는 21세에 아버지 뒤를 이어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부임 초기, 세믈러는 철저히 성과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관리와 통제 하에 조직을 운영했다. 부도 위기였던 실적은 개선되었고 점차 성장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구도로 직원들의 피로감은 높아졌고 지나친 통제는 구성원들의 의욕이 꺾이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 세믈러는 10년에 걸쳐 회사를 수평 조직으로 재편했다.
먼저 조직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감시하고 검열하는 과정을 없애자 직원들 스스로 부정행위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다. 투명성은 신뢰문화를 한층 더 강화해주었다. 모든 정보를 직원들에게 공개하는가 하면 민감한 재정 사항도 숨기지 않고 오픈했다. 직원들은 회사의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본인의 책무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는 직원들의 자율성을 믿고 스스로 업무 환경을 조직하게 하였다. 유연한 근무제도와 함께 자율적으로 직무 및 과업을 설정하게 함으로써 직무 만족도를 높이고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회사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느끼면서 업무에 더 몰두하며 책임감 있게 일하게 되었다.
셈코에서는 결정 사항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 관리조직을 통해 별도로 협의할 수 있다. 생산관리, 사업관리, 총괄 관리 등 총 세 개 분야로 구성된 관리조직은 철저히 수평적으로 운영된다. 격의 없이 협의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조율해 나간다.
그 결과 세믈러는 초기보다 더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평균 성장률은 46.5%에 달하고 직원 이탈률은 2% 미만에 불과하다.
HDC도 최근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직무 자율성을 높이고 개인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자발적으로 업무를 주도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HDC에서의 권위 역시 일과 성과를 중심으로 유연하게 만들어지는 분위기이다. 타인을 강제하는 무력이 아닌 자연스럽게 동기부여 하는 기폭제인 것이다.
강요나 지시에 의해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권력은 더 이상 '힘'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우리 조직의 힘과 에너지는 필요한 곳에서 낭비없이 연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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