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조직체계에서는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의 호칭이 개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아무리 격의 없는 소통과 수평적인 협업을 강조하여도 직급별로 정확히 업무가 나뉜 상명하복(上命下服) 구조에서는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호칭의 간소화’는 회사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모바일 플랫폼 시장을 선점한 카카오톡은 ‘데이빗’ ‘브라이언’ 등 최고 경영진부터 말단 사원까지 영어 닉네임을 부른다. 호칭 자율화는 사내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진하는데 효과적인 배경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례로 모 금융사에서 카카오뱅크 설립을 위해 임시 파견 보낸 직원들이 카카오의 수평적 문화에 익숙해져 원소속기관의 승진 약속 등의 복귀 혜택에도 불구하고 카카오뱅크에서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보수적인 대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2006년부터 모든 직원을 ‘매니저’라고 부르기 시작한 SK텔레콤은 12년만인 지난 해 호칭 제도를 개편, 직책과 관계없이 ‘님’으로 통일하기로 하였다. 의사결정의 자율성과 수평적 조직문화의 정착을 위한 것으로 영어 이름이나 별칭을 쓸 수 있도록 자유도를 넓혔다. 이러한 기조는 지난해 임원급까지 확대되어 부사장, 전무, 상무 등의 전통적인 임원직급이 폐지되고 본부장, 실장 등의 직책만 남겼다.
현대자동차에서도 지난해부터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의 직급이 사라졌다. '매니저'와 '책임 매니저'로 호칭을 간소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복장, 근무시간 등의 자율화도 함께 실시하고 있다. 교통수단으로서 이동성에 주력해왔던 전통적 개념의 자동차가 친환경, 자율주행을 비롯한 퓨처 모빌리티의 영역으로 진화하면서 보다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기 문이다.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미래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는 조직의 의지가 반영된 변화이다.
HDC 현대산업개발 역시 지난해 직급 체계를 정비하고 전사 호칭을 ‘매니저’로 통합하였다. 상호 존중하고 소통하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화함과 동시에 신속하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임직원 모두 책임과 권한을 가진 경영자로서 각자의 업무에서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많은 기업이 직급의 개편을 통해 변화의 시작을 알린다. 언젠가부터 호칭은 조직문화의 유연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호칭은 우리가 조직에서 독립된 주체이자 구성원으로서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이자 내비게이션이다.
“호칭 하나 바뀌었다고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질까?”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상에서 수시로 부르고 듣는 호칭의 변화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말이 갖는 힘, 이름이 지닌 상징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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