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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훌륭한 영화는 좋은 시스템 안에서 탄생한다.

HDC 소식

by 채널HDC 2020. 2. 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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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Oscar goes to ‘Parasite’

29일 월요일, 예상치 못한 낭보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 감독상에 이어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까지 수상하며 영화사에 새로운 기록을 썼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오스카상이며, 한 개인이 4개의 오스카상을 받은 건 아카데미에서도 월트디즈니 이후 처음이라고 하니, 전 세계 영화계의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물론 <기생충>이 만들어낸 놀라운 성과는 감독의 뛰어난 예술적 역량에 가장 크게 기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장르를 뛰어넘는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텔링 능력, 봉테일이란 별명이 만들어질 정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 방식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뛰어난 재능 외에도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젊은 영화 세대가 기존 영화계의 관행을 바꾸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왔으며, 그 성과가 <기생충>이라는 눈부신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술 대신 에스프레소를,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만든 젊은 감독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로 불린다. 봉준호,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 등 지금은 거장이 된 한국의 유명 감독들이 이때 대거 등장했다. 이들은 기존 영화 세대의 관행을 거부하며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90년대 이전의 영화 투자 방식은 룸살롱과 같은 술집에서 접대를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투자도 기업보다는 개인 투자로, 계약서를 술집에서 작성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젊은 영화인들은 이러한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가 의도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관행이라고 일컬었던 것들이 젊은 감독들에겐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한 유력인사가 감독들을 술자리에 부르자 박찬욱은 에스프레소를 류승완은 우유를 주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간이 흘러 이러한 성향을 가진 감독들이 영화계의 주류가 되면서 영화계 시스템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 접대 문화가 사라진 자리는 실력 있는 실무진의 자리로 채워졌다. 독특한 영화적 시도를 하는 젊은 감독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기획을 도맡아 하는 전문 영화 프로듀서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 바로 이 시기다.** 실력 있는 여성 제작자가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에 있다. <기생충>의 제작자가 여성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문 프로듀서들로 인해 영화의 소재와 시도는 더욱 다양해졌으며, 투명하게 달라진 투자 방식으로 대기업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개성있는 감독들이 등장한 배경엔 예술에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는 영화진흥원의 정책 변화도 있었다. 80년대 영화 내용을 사전 검열하던 영화진흥원이 90년대에 들어와 정책을 감시에서 지원으로 바꾸고,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교육 기관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세운 것이 큰 바탕이 됐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허진호 감독, 최동훈 감독 등 재능있는 감독들을 배출하며 한국의 영화 사관학교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 그들이 변화시킨 달라진 제작 방식과 대기업의 전문적인 투자, 젊은 세대가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 전문교육기관.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한국 영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구가하며 지금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주 52시간, 지키면서 일한다.

변화는 촬영 현장에서도 이루어졌다. <기생충>은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주52시간제를 기본으로 하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한 후 촬영에 들어간 것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영화 옥자설국열차를 제작하며 봉준호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에 영향을 받은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지만***, 실은 이것은 영화 <기생충>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5년 사이에 영화인들은 스텝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최근엔 계약서를 작성하고 작업하는 방식이 영화계에 정착되었다고 한다.

선배 영화인들도 젊은 날엔 어려움을 겪었다. 봉준호 역시 조감독 시절에는 7-8년 정도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에 대한 꿈으로 열악한 현실을 버텨야 하는 시스템을 비판하며 전문 조감독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의 변화는 본인이 겪은 구조적 불합리를 나 때는 말이야.’ 하며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지금은 거장처럼 보이는 감독들도 당시엔 삐딱한 젊은 세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원치 않는 걸 거부하며 영화계에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주류가 되어 발전해온 한국 영화계는 20여 년이 흐른 지금 최고의 결실을 꽃피우게 됐다.

최근 우리 회사도 기존의 관행대로 해오던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호칭 단일화 제도 도입과 멘토링 행사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임직원들에게는 아직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어? 하는 냉소적인 시선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밤늦은 술자리를 커피 마시는 회의로 바꾼 것처럼, 우리 회사의 작은 시도가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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